차 없는 청정도시 체르마트
아찔했던 첫날의 기억을 뒤로한채 푹자고 일어나니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체르마트는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 차량 이용을 통제하고 전기버스나 전기택시를 이용한다. 2박을 예약한 체르마트 숙소는 Hotel Testa Grigia란 곳인데 8개월 전에 1박 22만9천원에 예약했다. 침대가 푹신해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화장실은 욕조가 딸려 있을 정도로 넓직했다. 베란다에서는 거리의 풍경과 멀리 산을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체르마트 중심 거리를 걷다보면 건물 사이에 작은 호텔 입구로 들어갈 수 있는데, 밤에는 상점도 다 문닫고 다니는 사람도 없어 시끄러울 걱정도 없다.
이번 여행은 조식이 다 포함이라 아침 걱정이 없었다. 대부분 빵과 계란, 치즈, 과일, 커피 등 간단한 끼니 위주지만 평소 아침은 간단한 건강식으로 먹는 것을 선호했기에 입맛에 잘 맞았다. 오전에는 체르마트 동쪽의 로트호른을 따라 올라가다 내려오며 하이킹을 할 예정이었다. 중간에 호수에서 컵라면을 먹기 위해 준비해 온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 한국에서 커플로 맞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도 착용하고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마주한 마테호른
밖을 나오니 따사로운 햇살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파란 하늘에 조각 구름이 듬성듬성 보였고 햇살 비친 체르마트 곳곳의 풍경이 모두 선명했다. 하이킹을 계획한 날에 날씨가 맑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체르마트에서 마테호른(Mattehorn)을 잘 볼 수 있는 전망대는 로트호른, 고르너그라트, 마테호른 글레이셔 파라다이스 3곳이 있는데 먼저 로트호른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로트호른으로 가려면 푸니쿨라를 타고 수네가(Sunnegga)로 이동했다가, 다시 곤돌라를 타고 블라우히에트(Blauherd)로 이동했다가, 케이블카를 타면 도착할 수 있다. 우리는 로트호른까지 올라가지는 않고 블라우히에트에서 하이킹을 하며 수네가로 내려오기로 하였다.
체르마트 푸니쿨라역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블라우히에트까지 가는 티켓을 구매하였고 스위스 트레블 패스 소지자는 반값으로 할인해 주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금세 수네가에 도착하였고 바로 곤돌라에 탑승하였다. 안락한 곤돌라에서 풍경을 이리저리 감상하다 익숙한 봉우리가 보였다. 마테호른이 선명하게 보였고 왜 세상에서 사진이 가장 많이 찍힌 산이라고 불리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곤돌라를 타고 블라우히에트에 도착하였다. 아래 지역보다는 차가워진 공기에 쌀쌀했지만 하이킹 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었다. 우선 매점에서 토블론 초콜릿을 구입하여 마테호른 인증샷부터 남겼다. SNS에서 봤던 사진에서는 초콜릿 포장의 마테호른이 왼쪽 구석에 있어서 사진 찍기 좋았는데 요즘에는 가운데에 위치한 것만 나오는 것 같다.
5개 호수의 길을 따라 평생 기억에 남을 하이킹
5개 호수의 길(5-Seenweg)은 마테호른 근처 하이킹 코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블라우히에트역에서 수네가역까지 5개의 호수(슈텔리 호수 - 그린지 호수 - 그륀 호수 - 모스지 호수 - 라이 호수)를 따라 이어진 코스이다. 하이킹 내내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상쾌한 공기를 쐬며 지상 낙원에서 힐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다고 하던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청정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분은 최고였다. 이 모든 자연과 공기를 한국에 가져가고 싶었다.
먼저 슈텔리 호수에 도착했다. 수면 위로 마테호른이 영롱하게 비쳤고 호숫가에는 사진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진심으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동화같은 풍경이었다. 불과 며칠전까지 한국에서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이 새까맣게 잊어졌다. 슈텔리 호수를 맘껏 구경하고 하이킹을 이어갔다. 코스가 생각보다 짧지 않아 중간에 다른 호수는 지나치고 마지막 호수인 라이 호수까지 쉬지않고 갔다. 라이 호수는 수네가역 바로 근처에 있는 호수인데 아이들이 놀 수 있게 공원도 조성돼 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돗자리를 깔고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먹은 컵라면은 꿀맛이었다.
빙하기가 남긴 절경, 고르너 협곡
5개 호수의 길을 따라 하이킹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체르마트도 해발 16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내려와보니 훨씬 따뜻했고 해가 중천에 뜨니 더웠다. 옷을 갈아입고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마테호른의 3대 전망대 중에 오전에는 로트호른을 가봤으니 오후에는 고르너그라트에 가보기로 했다. 체르마트는 인구가 만명도 되지 않는 마을이지만 마테호른을 보고 스키를 타러오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이 작은 마을에 롤렉스 매장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가기위해서는 산악열차를 따로 타야한다. 그런데 매표소에 가보니 요 며칠간 자연재해로 레일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오늘 날씨는 참 좋은데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싶었다. 일단 체르마트 동네를 둘러보며 일정을 수정하기로 했다. 근처에는 어제 밤늦게 도착해 정신없이 지나친 체르마트역도 위치해 있었다. 마을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으면 고르너 협곡을 갈 수 있다고 하여 한번 가보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체르마트 동네를 가로질러 고르너 협곡에 도착했다. 이곳은 2억 2천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생겼는데, 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1886년부터 관광 데크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고 물 소리가 협곡에 울려퍼졌다. 근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가볍게 협곡 풍경만 보려고 왔는데 이곳도 하이킹 코스가 있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을 가려고 직원에게 물으니 40분정도 코스를 따라 걸으면 식당에서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계획에 없던 하이킹을 하게되었다. 좀 힘들긴 했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한다는 긍정의 마음으로 코스를 마쳤다.
체르마트 마실, 그리고 첫 퐁듀
오전 오후 2차례나 하이킹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체르마트 중심가로 다시 돌아왔다. 동네에서 마테호른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히는 키르히 다리를 마주했고 내일 아침 이곳에서 황금 마테호른을 꼭 보기로 마음 먹었다. 거리 곳곳에 마차도 볼 수 있는데 고급 호텔에서는 마차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스위스 전통 가옥 샬레(Chalet)가 예쁘게 조성된 힌터도르프 거리는 작은 민속촌 같았다. 마테호른을 본뜬 유리 돔 건물이 눈에 띄어 가봤는데 마테호른 박물관이었다. 스위스 트레블 패스 소지자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였고, 마테호른 등반의 역사와 비극적 사고 등 다양한 히스토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저녁을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는 오늘도 고민거리였다. 일단 오늘은 퐁듀를 꼭 먹어보기로 하였고 몇번의 서칭 후에 평점이 나쁘지 않은 Whymper Stube라는 곳으로 갔다. 예약없이는 입장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운좋게 웨이팅없이 앉을 수 있었다. 퐁듀와 돈까스 맛이나는 스테이크를 시켰고 체르마트 맥주를 들이켰다. 총 71.8프랑의 비용이 나왔고 서비스도 훌륭했고 여러모로 기분좋은 식사였다. 후회없이 알찬 하루를 보낸 듯하였고 이후에는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숙소로 와서 이른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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