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마테호른을 볼 수 있을까
오늘은 체르마트를 떠나는 날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가볍게 외투를 걸치고 키르히 다리로 향했다. 뜨는 태양이 마테호른을 비추어 봉우리가 황금빛을 띠는 황금 마테호른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출 예정 시간 5시 40분 이전부터 키르히 다리에는 이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황금 마테호른을 과연 볼 수 있을지 설레였다. 저멀리 하늘이 조금씩 환해지고 붉은 빛이 봉우리에 도달하여 서서히 마테호른을 비추었다. 그러나 근처의 구름때문에 태양빛이 온전히 비추어지지 못해 온전한 황금 마테호른을 볼 수는 없었다. 먼훗날 다시 이곳을 찾았을때 더 큰 기쁨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서둘러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마테호른에서 시작해서 마테호른으로 끝났던 체르마트를 뒤로 한채 이제는 융프라우를 보러 인터라켄으로 떠날 시간이다. 첫날 타고 온 셔틀기차를 타고 Tasch에 도착하였고, Tasch에서 다시 Visp까지 가야했다. 그러나 자연재해 사정으로 인해 Visp행 기차가 운행이 취소되어 대안으로 마련된 버스를 타고 Visp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유럽 여행에서 버스를 탈 때는 기차보다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캐리어 보관이 힘들어 빨리 타서 자리를 먼저 확보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햇살이 아름답게 비추던 슈피츠성
인터라켄을 중심으로 서편에는 툰 호수(Lake Thun), 동편에는 브리엔츠 호수(Lake Brienz)가 위치한다.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중에 오전에 잠시 툰 호수에 접해있는 작은 도시 슈피츠(Spiez)에 들르기로 하였다. 슈피츠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오늘도 햇살은 눈부시게 밝아 작은 마을을 둘러보기에 제격이었다. 슈피츠역에도 캐리어 보관함이 있었고 이곳은 카드는 불가하고 직접 동전을 넣어야해서 인포메이션에 교환을 부탁하였다. 캐리어를 맡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슈피츠성으로 향했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니 슈피츠성에 도착했다. 이곳은 933년 처음 건설되었고 중세 시대에 확장되어 현재는 국가 유산으로 등재되어 회의, 콘서트 등 여러 행사에 사용된다고 한다. 정원으로 햇살이 비추었고 따뜻한 이 공간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슈피츠성 바로 왼편의 언덕을 따라 내려가면 호수와 마주한 공원이 위치해서 가보았다. 마을 어린이들이 소풍와서 평화롭게 놀고 있었고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시원한 호수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돗자리를 펴고 준비한 보온병으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잠깐의 피크닉을 즐겼다.
쿱마트에서 구매한 김밥과 라면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창가에 보이는 푸르른 툰호수와 중간중간 보이는 작은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몇분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하였고 다시 캐리어를 맡겼다. 저녁에 그린데발트 숙소로 올라가기 전에 브리엔츠 호수 근처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100년 된 증기 산악열차를 타다
인터라켄 동역에 짐을 보관하고 브리엔츠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는 달리는 기차 오른편으로 브리엔츠 호수의 전경이 펼쳐졌다. 기차를 탈 때는 기차의 운행 방향과 보려는 풍경의 위치를 구글맵에서 미리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브리엔츠에는 로트호른으로 올라가는 증기 산악열차가 있어 타보기로 했다. 브리엔츠 역 바로 앞에 BRB(Brienz Rothorn Bahn) 역이 위치하여 찾기 쉽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 소지자는 50% 할인인데, 우리는 현장 구매하지는 않았고 오전에 미리 어플로 예매하였다.
브리엔츠 로트호른은 브리엔츠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2350m 높이의 산봉우리다. 1892년부터 운행한 증기기관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속도가 느려 정상까지 1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다른 열차와 다르게 창이 완전히 오픈되어 산공기와 풍경을 오감으로 천천히 감상하며 올라갈 수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씨도 한몫하였다. 산 중턱에서는 풀 뜯어먹는 소와 양떼 무리를 발견할 수 있고 자연의 냄새와 소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뜨겁던 공기가 조금씩 시원하고 차게 느껴지더니 어느새 로트호른 정상에 도착하였다. 구름낀 정상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저멀리 보이는 브리엔츠 호수와 주변의 산봉우리에 걸친 구름들은 신비로웠고 알프스의 독특한 산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정상에 위치한 카페에서 가볍게 커피 한모금하며 풍경에 감탄하였다.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를 가다
왕복 2시간이 넘는 브리엔츠 산악열차 투어를 마치고 이제는 이젤발트(Iselwalt)에 가기로 하였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 유명한 이젤발트는 브리엔츠에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따라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첫 유람선 탑승이라 설렜다. 스위스 트레블 패스 소지자는 무료로 탑승 가능하고 2층은 1등석, 1층은 2등석 소지자가 탈 수 있다. 햇살 가득한 날씨는 어느덧 구름이 조금씩 끼고 있었고 브리엔츠 호수의 한복판에서 유유히 유람선을 즐기며 이동했다.
드디어 이젤발트에 도착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와이프가 이곳의 선착장에서 반드시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한국에서 삼각대도 구매할 정도로 기대한 곳이다. 브리엔츠 선착장에 내리면 저멀리 통행이 제한된 작은 선착장이 보인다. 드라마에서 리정혁(현빈)이 피아노를 쳐서 유명해진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일본인 등 전세계적으로 관광객들이 이곳에 사진찍으러 많이 와서 이제는 유료 포토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5프랑을 넣어야 입장 가능하다.
5프랑의 본전을 뽑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와중에 하늘의 구름은 더욱 가득해졌다. 비가 내릴 것 같아 얼른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호숫가를 따라 위치한 동화같은 집들과 풍경은 평화로웠고 어느 카페에서 잠시 쉬고 가기로 하였다. 맥주 한 잔을 주문하여 들이켰다. 이렇게 낭만적인 마을에서 동거동락하며 드라마를 함께 찍으면 정말 사랑이 싹 트지 않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비오는 그린데발트, 그리고 숯불 삼겹살
이젤발트에서 인터라켄 동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천만다행이도 우리가 버스를 타니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에게 날씨 운이 따르는구나 싶었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해서는 융프라우 vip 패스권을 구매하였다. 한국의 동신항운에서 신청하여 출력한 프린트물을 보여주고 2일권을 1인 200프랑에 구매하였다. 오늘의 숙소가 위치한 그린데발트까지는 융프라우 vip 패스권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았다. 패스권을 구매하면 융프라우 기념여권과 융프라우에서 먹을 신라면 교환권을 준다. 기차를 기다리며 역앞의 대형 COOP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렸다. 도착한 그린데발트역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내리막 길이라 캐리어를 쉬엄쉬엄 끌며 이동했다. 드디어 예약한 Hotel Cabana에 도착하였다. 이곳도 8개월 전에 1박에 39만원에 예약했는데, 그린데발트는 인터라켄과 달리 워낙 숙소가 부족하여 예약이 힘들고 값도 비싼 편이다. 숙소 뒤편으로 보이는 아이거 북벽 뷰 때문에 한국인을 비롯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우리 숙소는 야외 가든에서 고기를 직접 구워먹을 수 있는 곳이라 COOP 마트에서 사온 삼겹살을 구워서 먹어보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하여 9시가 지나니 완전히 그쳤다. 모든 것이 셀프였고 숯을 직접 지피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비 묻은 테이블과 의자를 청소하고 익힌 숯에 고기를 굽고 챙겨온 밥과 라면을 함께 먹었다. 화력이 정말 약했고 삼겹살이 정말 천천히 익었지만 결국 삼겹살 굽기에 성공했고 10시가 넘어서 해가 질 때쯤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정말 득보다 실이 많았던 식사 준비였지만, 아이거 북벽 뷰를 보면서 구워먹는 삼겹살의 낭만은 지금도 가장 짜릿한 기억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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