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를 떠나는 날
9/26 목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니스에서의 마지막 여행이자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날이다. 어제까지 화창했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첫날처럼 구름끼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전에 해변을 따라 아침 러닝을 했다. 바닷가를 따라 길이 워낙 잘 조성되어 있어서 한 방향으로 뛰기만 하면 되서 편했고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러닝하는 것이 상쾌했다. 러닝 후 씻고 짐을 다 싸놓고 나서는 잠시 꽃시장 구경을 갔다. 니스 꽃시장은 오전에만 운영되기에 첫날 못본것을 오늘 봐야했다. 비오는 날씨지만 정말 화려한 꽃이 많았고 거리에는 꽃내음이 가득했다. 라파예트 백화점도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떠나기로 하였고 파리에서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작은 미니 쿠퍼 뒷좌석에 캐리어 2개를 올려 놓으니 운전석도 당겨 앉어야 할 정도로 차가 비좁았다. 다행히도 차 루프가 잘 닫혔고 니스 근교 투어를 시작하였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서쪽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앙티브(Antibes)와 칸(Cannes)을 구경하고 니스 공항에서 렌트카를 반납하고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도착한 앙티브도 다른 남프랑스 도시처럼 중세의 향기가 났다. 도시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문을 지나면 상점과 식당, 카페가 즐비하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성문 밑에는 비를 피하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점심부터 먹기로 하였고 가볍게 먹기 위해 브런치 식당으로 구글에 소개된 Mellow Factory 라는 곳을 찾았다. 외관은 작아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지하로 내려가 동굴같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커피를 마셨는데 다소 헤비했고 6만3천원의 비용이 들었다.
피카소가 사랑했던 앙티브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와도 비는 계속 추적추적 많이도 내리고 있었다. Mellow factory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앙티브 광장이 보였고 성안의 빼곡한 건물 숲 사이에서 탁트인 느낌을 받았다. 비에 젖은 옛 건물들과 풍경들은 우수에 젖은 듯했다. 앙티브 대성당으로 가던 골목에 프로방스 시장(Marché provençal)이 위치하는데 각종 해산물과 과일, 야채를 신선하게 파는 전통시장이라고 한다. 오전에만 운영한다고 하여 우리가 갈 때는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분홍색과 주황색 외벽으로 아름답던 앙티브 대성당은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로스차일드 별장과 닯은 듯했다. 과거 해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탑과 요새로도 쓰였다고 한다.
앙티브 대성당 옆에는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이 위치한다. 원래 귀족 가문의 성이었던 이곳은 1925년 그리말디 박물관으로 거듭났고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로도 쓰이게 되었다. 생폴드방스를 자주 찾아 휴가를 즐기던 피카소가 우연히 이곳을 찾아 지중해 풍경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작품 총 23점의 그림과 44점의 드로잉이 이곳에 기부되어 전시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한 대기줄이 워낙 많아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만족하였다. 피카소라는 인물은 프랑스 전역과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 문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칸 영화제가 열리는 곳
엔티크함이 물씬 풍겼던 앙티브 구경을 마치고 다음으로 칸에 도착했다. 이곳은 영화제로 워낙 유명한 도시인 만큼 먼저 칸영화제가 열리는 콩그레스 궁전으로 향했다. 항구 옆에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이곳에 오기까지 차도 많고 교통 신호도 헷갈려 어려움이 좀 있었다. 주차는 콩그레스 궁전 지하에 넓찍하게 충분한 공간이 있어 여유롭다. 알다시피 칸 영화제는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1946년 처음 개최된 이래 매년 5월에 열린다고 한다. 이곳은 칸 영화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명행사를 진행하는 현대적인 다층 컨벤션 센터로 마치 우리나라의 코엑스 같은 곳이다. 외관은 그냥 보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칸 영화제를 기념하는 샵이 존재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각종 할리우드 배우들의 핸드프린팅과 함께 당시의 영상을 소개해 준다. 영상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너무나 반가웠다.
기념샵에서 나와 옆 건물로 이동하면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멋진 간판과 함께 거대한 계단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배우들이 입장하는 곳인데 레드카펫이 놓여져 있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걷는 배우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축제를 함께 하고 있는 듯했다. 콩그레스 궁전에서 나와 맞은편으로 몇분 걸으면 Olympia 영화관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칸 영화제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음향과 좌석도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하여 평이 좋다. 항구에서 해안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높은 곳에 위치한 노트르담 데스퍼란스 성당에 올라갈 수 있다. 또한 이곳을 올라가는 언덕 초입구에는 Les Murs Peints - Cinéma Cannes 라는 벽화를 볼 수 있는데 영화 장면과 카메라 장비 등이 멋지게 그려져 있어 칸 영화제의 도시라는 인상을 다시 한번 받았다. 성당까지 올라가서 보이는 칸 전역과 항구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다
칸 여행을 마치고는 니스 공항으로 이동하였고 렌트카를 반납하고 출국 수속을 마쳤다. 9시55분에 출발하여 바르셀로나에 11시20분에 도착하는 부엘링 항공을 예약하였는데 어찌된 것인지 출발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나둘씩 다른 항공사는 운행이 취소되고 대부분 연기되다가 거의 4시간이 지나서야 출국이 결정되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는데 기상 상황 때문이라고 하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텅빈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하였다. 다행히도 공항에서 카탈루냐 광장까지 데려다 주는 공항 버스가 새벽에도 계속 운행하여 시내로 이동할 수 있었다. 텅 빈 버스에는 우리 뿐이었고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카탈루냐 광장(Plaça de Catalunya)에 도착하였다. 바르셀로나 교통의 중심지인 이곳에서는 남쪽으로 람블라스 거리(Rambla del Poblenou)로 바로 이어지고 숙소를 이 근처에 잡아서 편히 도착할 수 있었다.
람블라스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지중해를 향해 뻗어있는 가로수 길로 이곳의 상징 같은 거리이다. 새벽의 이곳에는 몇몇 술취한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지만 가로등이 환하고 치안이 생각보다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은은한 불빛과 나무들의 향연으로 이뤄진 밤거리가 아늑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람블라스 거리 근처에 위치한 Hostal Òperarambles 라는 곳이다. 4박에 75만원에 예약하였는데 무엇보다 관광지 접근성이 너무 좋고 시설도 깔끔하고 서비스도 훌륭하였다.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푸니 새벽 5시가 되었고 샤워하고 깊은 잠에 들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첫날은 시작되었다.
몬세라트 수도원에 가다
9/27 숙소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오늘은 교외 지역인 몬세라트 수도원에 가는 날인데 거리에 나가 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원래는 오전부터 일정을 시작하려 했지만 비행기 연착으로 새벽 5시가 되서야 잠자리에 들어 점심이 되서야 일어났다. 덕분에 어렵게 1시로 예약한 수도원의 소년 합창단 공연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카탈루냐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진 몬세라트(Montserrat)라는 산 중턱에 위치한 수도원은 믿기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고 영적 체험을 하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의 스토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스페인의 3대 성지라 불린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 먼저 에스파냐역으로 이동하여 FGC 기차 티켓을 끊어야 한다. FGC를 타고서 Monistrol de Montserrat 역에서 내린 후 산악열차로 환승하거나 Aeri de Montserrat 역에서 내린 후 케이블카로 환승하여 몬세라트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는 산악열차로 환승하기로 하였고 왕복 2인 52.6유로의 티켓 비용이 들었다.
FGC를 타고 도착한 Monistrol de Montserrat 역에서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이곳에서 몬세라트로 가는 산악열차의 배차간격이 거의 1시간에 달해 오래 기다렸지만 주위 풍경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구비구비 산등성이를 지나는 산악열차는 과거 스위스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였다. 도착한 몬세라트 수도원은 정말 장관이었다. 수많은 바위들이 튀어나온 봉우리 한켠에 어떻게 저런 거대한 수도원을 건설했는지 정말 미스테리할 정도였다. 수도원에 도착하면 트레킹 코스 2가지 방법이 있다. 능선을 타고 더 올라가는 산 조안 길 코스와 내려가는 산타 코바 길 코스이다. 산 조안 길 코스에서는 멀리 산 미켈 십자가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몬세라트 수도원이 장관이다.
산타 코바 길 코스로 내려가면 산타 코바 예배당에 도착하는 데 이곳은 성모상이 동굴 안에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30분 이상 오래 걸어야 하는데 길목마다 놓여진 성스런 조각상과 멀리 시원하게 보이는 뷰를 보면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날씨가 좋은날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되었고 정말 최고의 트레킹 코스인 듯 하였다. 올라올때는 조금 힘들어서 중간에 푸니쿨라역을 발견하고는 타고서 편하게 왔다. 왜 이곳이 '천사들이 조각한 땅' 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고 한걸음씩 걸으며 더 진하게 느껴보고자 하였다.
바르셀로나 밤바다의 추억
몬세라트 트레킹을 마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 땅은 로마 시대 때 수도원이 세워지기 전부터 비너스를 숭배하는 신전이 있을 만큼 영엄한 곳이라 한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간절히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예배당 안쪽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검은 성모상을 만나는 곳이다. 성모상이 들고 있는 공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목각상에 바른 광택제가 화학변화를 일으켜 검은색 피부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로 영엄한 느낌을 받았다. 몬세라트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타고 왔던 산악열차와 FGC 열차를 차례로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복귀하였다. Puertecillo Paral·lel 란 해산물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항구 도시에 온 만큼 신선한 해산물을 먹고 싶었다. 이곳은 즉석에서 보이는 해산물을 주인에게 말하면 바로 요리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여러 튀김과 조개, 새우 등 갖가지 해산물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고 총 48유로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둑하였다. 저멀리 항구에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듯하였다.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쭉 걸으면 우뚝 솟은 콜럼버스의 탑을 발견할 수 있다. 60m 높이의 웅장한 이 탑은 1888년 만국 박람회 때 세워진 기념탑이라고 한다. 그 뒤로는 지중해와 접해있는 벨 항구가 있다. 정박된 보트들과 부둣가에 풍기는 바다 냄새는 운치를 더해주었다. 바닷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Maremagnum 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 각종 패션 브랜드와 식당, 카페 등이 입점해 있는 대형 쇼핑몰로 바다의 운치를 느끼며 쇼핑하기 좋은 곳이다. 밤 10시까지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여 우리도 여기서 가성비 좋은 옷을 조금 구매하였다. 바르셀로나의 밤바다를 구경하고는 다시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중간에 잠시 들른 레이알 광장은 가우디가 만든 가로등이 있어 유명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