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호의 삶을 엿볼수 있던 로스차일드 별장
9/25 니스에 온 셋째날이 밝았다. 오늘도 역시나 렌트카를 타고 니스 근교의 남프랑스 투어를 다니기로 하였다. 다행히 며칠간 구름낀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화창한 날씨가 반겨주었다. 먼저 가볼 곳은 생장카프페라(Saint-Jean-Cap-Ferrat)였다. 이곳은 니스에서 동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지역인데 바다로 돌출된 반도 지형으로 삼면이 지중해로 둘러싸인 곳이다. 이곳에는 귀족과 부호들의 별장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저택으로 뽑히는 로스차일드 별장(Villa Ephrussi de Rothschild)에 가보기로 하였다. 별장 앞에는 안내 요원이 있어 지정된 구역에 주차를 할 수 있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오면 주차 자리가 부족할 것 같았다. 입장료는 1인 17유로의 가격이었다.
로스차일드 별장은 대부호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핑크색의 별장 메인 건물은 베네치아 양식의 외관과 고딕 양식의 현관, 피렌체 르네상스 양식의 내부 계단 등 여러 시대 최고의 양식을 한데 섞어 놓은 곳이었다. 궁궐같은 건물 앞으로는 야자수와 분수 등으로 이뤄진 거대한 9개의 정원이 있어 웬만한 수목원 못지 않다.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곳을 소유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나 노력도 엄청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정말 많을 수록 가장 소유하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닐까 싶었다. 별장 내에는 Salon de thé - restaurant 라는 식당 겸 찻집이 있다. 이곳에서 식사는 오전 12시부터 가능한데 11시쯤 와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창가쪽의 상석은 식사로 예약되어 앉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였다.
생장카프페라에서 만난 모래 바다
로스차일드 별장 구경을 마치니 정오가 되었다. 해가 중천에 떠있고 날이 너무 좋아 바다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반도 지형의 생장카프페라에는 해수욕장이 많다. 구글 후기를 보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찰나에 Plage Cros Dei Pin 이라는 해변에 가보기로 하였다. 자갈 해변으로 발아파서 불편했던 니스 해변과 달리 모래 사장으로 이뤄지고 후기도 좋았다. 해안가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바다 수영을 하고 놀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용 비치였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 프라이빗 비치 같았다. 피서철이면 관광객이 너무나 몰리는 우리나라의 여름 풍경과 대조적이었다. 물놀이를 마치고는 해안가 안쪽에 샤워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 간단히 몸을 씻을 수 있었고 차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바다 수영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생장카프페라에서 또다시 5km 정도 동쪽으로 더 가면 만날 수 있는 에즈빌리지(Èze village)라는 작은 마을이다. 길이 워낙 잘되어있어 이곳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주차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워낙 관광객으로 넘치는 곳인데 대부분 자차를 타고 오기에 자동차가 붐비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을 초입구에 Parking Général De Gaulle 라는 주차 빌딩이 있는데 입구만 잘 찾으면 이곳은 공간이 넉넉하여 주차하기가 좋다. 에즈빌리지는 산위에 있는 마을인데 올라가기 전에 초입구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L'Atelier Gourmet 라는 샌드위치 가게인데 간단히 빵과 커피를 마시기 좋다. 다만 장사가 바빠 점원 직원이 주문 실수를 할 수 있으니 주의해서 확인해야 한다.
지중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에즈빌리지
에즈 빌리지 최상단에는 다양한 선인장을 모아 조성한 열대 정원이 있는데 이곳은 인기가 워낙 많아 관광객이 붐빈다. 또한 400m 높이에 달하는 열대 정원의 꼭대기에서는 지중해를 바라보는 파노라마 절경을 가파른 절벽 위에서 감상할 수가 있다. 간단히 빵과 커피로 배를 채우고 우리는 다시 걸어서 관광을 시작했다. 올라가는 초입구에는 많은 상점과 창의적인 전시관이 즐비했다. 올라가다 보면 티켓머신이 있는데 1인 8유로의 가격으로 결제를 하면 티켓을 받아 지하철 개찰구처럼 통과하여 열대 정원에 입장할 수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여러 종류의 선인장과 온실에서만 보던 식물들을 마주하니 아프리카에 온 것만 같았다.
계단을 따라 오를때마다 달리 보이는 지중해 바다와 어우러진 열대 식물들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아프리카나 미국의 사막에서나 볼법한 신기한 선인장들의 모습은 이국적이었고 중간 중간 보이는 여인들의 동상은 마치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 같았다. 작은 성벽 마을이던 이곳은 13세기 로마의 침략을 피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흑사병이 한창이던 14세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1706년 스페인 전쟁 중에 루이 14세의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이후 성의 폐허를 식물원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평지가 펼쳐지고 남프랑스 전역과 지중해를 한눈에 둘러볼 수가 있다.
모나코 왕국을 가다
생각보다 에즈빌리지를 둘러 보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기세를 몰아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10km 정도 동쪽으로 더 떨어진 모나코에 가보기로 하였다. 모나코는 과거 박주영 선수가 뛰었던 AS 모나코로 알고 있어 프랑스령 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독립된 나라였다. 운전 중에 갑자기 국경이 바뀌었다고 알람이 뜨고 도시의 분위기도 다른 남프랑스와 달라 당황스러웠다. 모나코(Monaco)는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영토가 좁은 나라인데 현재 프랑스의 보호아래 독립국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도시는 생각보다 번잡하고 차량도 많고 다이나믹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Parking du Chemin des Pêcheurs 라는 대형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모나코 관광을 시작하였다. 주차장에서 나오면 바로 해안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푸른 바다가 장관을 이룬다.
주차장에서 해안길을 나와 계단을 올라 모나코 왕궁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올라가는 길에 멀리 보이는 모나코 항구는 정말 장관이었다. 빼곡히 늘어선 배들과 보트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물류와 사람들이 이동하는 요충지인지를 보여주었다. 며칠간 구경했던 니스와 남프랑스의 한적한 분위기와는 매우 달랐다. 번잡한 부산항을 보는 듯하였다. 모나코 왕궁 근처는 거대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으며 곳곳에는 포탄으로 만든 조형물과 대포가 산재해 있다. 한때는 스페인의 보호국이었다가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모나코는 그 위치적 중요성 때문에 타국의 침략을 많이 받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분투하는 역사의 기록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모나코 왕궁에 들어가다
여러 언덕 계단을 올라 모나코 왕궁에 도착하였다. 하얀 제복을 입은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왕궁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장엄하고 권위적이었다. 이곳도 영국의 버킹엄 궁전처럼 교대식 퍼모먼스도 진행한다고 한다. 1인 10유로의 티켓을 결제하면 입장할 수 있고 늦은 오후라 그런지 웨이팅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해주는데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어 영어로 들어야했다. 더욱 알찬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먼훗날 우리나라의 국력이 더 강해지거나 본인이 영어 실력을 더 키우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할 것 같다. 왕궁 내부는 외관보다 훨씬 화려했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처럼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방과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샹들리에를 비롯한 황금빛 인테리어가 화려했다.
모나코 왕궁을 보니 그들이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스페인과 프랑스로부터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왕궁 안뜰에서는 마침 AS 모나코 선수들의 유니폼 촬영이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가드들이 통행을 제한하여 멀리 보니 빨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모여 있었고 이곳 모나코궁이 모나코의 랜드마크 이구나 싶었다. 왕궁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저멀리 모나코 항구와 지중해가 펼쳐졌다. 이곳 또한 대포와 포탄 모형이 남겨져 장식되어 있었고 저멀리 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외지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곳은 정말 최고의 요새인 듯 했다.
이탈리아와 접해 있는 해안 도시 망통
모나코 구경을 끝내고 저녁 무렵이 되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고 렌트카도 비싼 돈에 빌렸으니 좀더 돌아다녀보고 싶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모나코에서 10km 동쪽으로 더가면 망통(Menton)이란 휴양도시가 있다고 하여 가보기로 하였다. 이곳은 이탈리아와 국경이 접해있는 곳이라 해안도로가 아닌 내륙으로 간다면 잠시 이탈리아를 거쳐서 도착하게 된다. 야밤에 돌아올때는 국경선이 막혀서 해안도로로 와야해서 애를 먹기도 하였다. 도착한 망통은 모나코와는 달리 전형적인 한적한 남프랑스 마을의 느낌이었다. Parking Old Town - Sablettes 란 곳에 주차를 하였는데 워낙 주차장이 넓고 출입구도 잘되어있어 편리했다.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을 마치고 나가는 차량이 많았다.
망통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Escaliers 라는 계단이다. 빼곡한 건물들 가운데 조금은 쌩뚱맞은 노란계단으로 타고 올라가면 대성당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Escaliers 는 단순한 계단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관광객이 빠지는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닫는 식당이 많았는데 노란 계단 옆에 Osteria da carlo 란 곳이 후기 좋고 영업 중이라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온갖 해산물을 튀겨서 나오는 fried general 과 라비올리를 시켰는데 입맛에 맞았다. 맥주와 음료도 함께하여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해가 지고서는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망통 해변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멀리 망통의 전망을 한번에 볼수있는 관람차가 있었고 런던아이를 떠올리게 하였다. 늦은 밤 다시 니스로 돌아가는 길에는 낮에 왔던 국경선으로 가다가 막혀 있어 멘붕이 왔다가 해안도로를 타고 무사히 숙소로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로 못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노심초사하면서도 짜릿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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