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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 자전적 이야기

by Jped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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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창 의대를 지망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당시에도 의대 열풍은 굉장했고 의학전문대학원이 처음 도입되면서 여러가지 혼란을 빚던 시기였다. 학교에서 장래희망과 관련된 과제를 받으면, 네이버에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 을 검색해보았고 여러 지식인들이 친절하게 답해준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의대 6년 + 인턴 레지던트 5년 + 군의관 3년, 남자의 경우 전문의로 시작하기까지 최소 14년이란 긴 시간이 걸리고 그 오랜 과정 역시 녹록치 않다는 내용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순수한 소년은, 의사라는 직업에서 풍겨져 나오는 명예로움과 의학드라마에서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인지 한치앞도 모르고 의대에 진학했다. 드디어 전문의가 된 지금, 조금은 고통스럽고 막막하기도 했던 기억들을 하나씩 차례로 들춰내보고자 한다. 

 

흉부외과를 소재로한 의학드라마, 뉴하트

 

의과대학 입학과 졸업

의사가 되기 위해 첫 관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의과대학은 의예과 2년 + 의학과 4년으로 총 6년으로 이루어져있다. 의예과는 의학을 공부하기에 기초가되는 자연과학과 여러 교양수업을 듣는 시기로, 비교적 여유롭고 일반 대학생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학과는 본격적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시기로, 꽉채워진 4년간의 커리큘럼 속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을 살게 된다. 의학과가 되면 본과 1학년부터 새로 학년이 시작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본과진입식이라는 것을 하고, 앞으로 펼쳐진 지옥을 마주하며 굳은 다짐을 하게된다. 

 

보통 본과 1학년 때는 생리학, 해부학, 조직학, 생화학, 면역학, 약리학, 유전학, 미생물학, 기생충학 등의 기초의학을 배우며 1~2주에 한번씩 시험을 치르게 된다. 시험에서 성적이 낮게 나오면 재시험을 보게 되기도 하며, 재시험을 보게 되면 가뜩이나 짧은 방학을 일부 반납하여야만 한다. 정말 지옥과 같은 일정으로 기억된다. 누가 더 빠른 시간에 스캐너처럼 ppt 와 족보를 달달외우고 하나라도 더 문제를 맞추느냐의 경쟁이 쳇바귀처럼 반복된다. 본과 2학년이 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1학년때 기초의학을 배웠다면, 2학년때는 조금 더 실용적으로 다가오는 임상의학을 배운다. 호흡기학, 순환기학, 소화기학, 신장비뇨기학, 혈액종양학, 내분비학, 신경과학, 류마티스학, 근골격계, 소아과학, 산부인과학, 정신건강의학과,가정의학, 임상통계학 등 무수히 많은 임상과목의 교수님들이 차례로 오셔서 각자의 전문분야를 강의해주시고 쳇바퀴처럼 시험은 또다시 반복된다. 본과 2년간의 무수히 많은 시험 속에서, 성적 표준분포표의 뒷 끝단에 위치하게 된 몇몇 동기들은 아래 학년으로 유급이 되어 고독한 낙오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본과 3학년 ~ 본과 4학년 1학기에는 강의실에서 나와 병원에 실습을 가는 시기이다. 본과 2학년때 배운 각 임상과목들의 실제 진료현장에 가서 어떻게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지 직접 눈으로 보는 시기로, 흔히 PK (Poly Klinic) 실습 시기로 불리운다. PK 가 되면 매일 같이 출근하여, 교수님을 따라 같이 회진을 돌고 환자를 배정받아 그 환자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하며 케이스 발표라는 것을 주로 하게 된다. PK 시기에는 주로 시험보다는, 이러한 실습 기간에 마주한 환자들에 대해 공부하며 발표하는 시간을 주로 갖는다. 지난 2년의 암흑기에서 조금은 탈출하여 인간다운 삶?을 사는 시기로 어느덧 나이는 20대 중반에 들어서고 모태솔로였던 동기들도 하나씩 연애라는 것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끔씩 병원에서 선배 형누나들이 노예처럼 인턴과 레지던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마주치면, PK 의 꿀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이 찾아온다.  

 

본과 4학년 2학기가 되면 국가고시를 준비하게 된다. 배정된 수업은 거의 없고, 자유로운 시간에 동기들끼리 조를 이루어 같이 공부하거나 혼자 도서관에서 묵묵히 책장을 넘기는 시기이다. 국가고시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뉘는데, 이 또한 만만치가 않다. 실기시험은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진료 능력을 평가하는 CPX 와, 임상 술기 능력을 평가하는 OSCE 로 나뉜다. 실기시험은 실제 수험생의 행위를 감독관 (교수님)이 눈앞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전국 학생들이 동시에 시험을 보는게 불가함으로 보통 9월 ~ 12월에 걸쳐 인원을 분배하여 시험을 치른다. 제한된 시간에 떨지 않고 침착하게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간혹 본과 성적이 매우 좋았던 동기들도 긴장하여 시험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필기시험은 1월에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서 1박2일 동안 진행되며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에 모두 합격하게 되면 드디어 의사가 된다. 보건복지부에서 의사면허증을 발급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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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과 레지던트

국가고시에 합격 후 일단 의사가 되기는 하였다. 말그대로 의사는 되었지만 보통의 의사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졸업한 의사들은 대학병원으로 입사하여 또 다른 지옥인 수련의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실습을 경험한 익숙학 모교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기도 하고, 막연히 큰 병원에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혹은 특정한 과에 대한 수련을 목적으로 수련병원을 선택한다.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고 바로 페이닥터로 일하거나, 기초의학을 전공하여 교수가 되거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남자의 경우에는 군복무를 먼저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이러한 경향이 이전보다 더 많아지는 추세이다. 

 

응급실 인턴의 이야기를 그린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

 

수련의 과정은 인턴과 레지던트로 이뤄진다. 인턴은 말 그대로 병원에 처음으로 입사하여 신입사원으로서 일하는 기간이다. 각종 채혈, 동의서 받기, 수술 보조, 응급실 초진 등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기에 필요한 각종 기본적인 업무를 맡는다. 업무는 굉장히 많은 반면, 인턴 선생님의 수는 적기 때문에 매우 과중한 업무가 각각의 인턴에게 주어지게 된다. 어느 병동에서 채혈을 하고 있는 와중에 중환자실에서 연락이와서 CPR을 도우라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뛰어가기도 하고, 응급실에서 위독한 환자의 초진을 보다가 멘붕에 빠지기도 한다. 정신없던 인턴생활이 어느덧 적응이 될때쯤, 슬그머니 지망과에 대한 고민이 몰아친다. 많은 인턴들이 보통 자기가 희망하는 과를 정하고 들어오지만, 경쟁일 경우도 많고, 또한 자기가 지원하고 있는 과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인턴성적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각 과에서 인턴 선생님의 전반적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때가 많다.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인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희망과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신입 의사를 괴롭힌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인턴 시기가 지나고, 만약 원하는 과에 무사히 합격하여 레지던트가 되었다면 이제는 1년차의 삶이 시작된다. 레지던트 1년차들은 밤낮으로 수술방과 병동, 응급실을 좀비처럼 누비며 업무들을 기계처럼 처리하며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채로 살아간다. 본인 앞으로 배정된 환자들에 대한 끝없는 중압감과, 한치라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교수님 사이에서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나 끝없이 반복된 업무와 하드트레이닝 속에서 병원이라는 환경은 어느덧 익숙해지게 되고, 환자를 마주하고 교수님과 브리핑 하는 것에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된다. 1년차가 지나고 2년차가 되면, 어느덧 아랫년차도 생겨 교육도 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게 된다. 응급실에서 위중한 환자의 응급처치를 도맡아 골든 타임을 무사히 넘기기도 하고, 짬내서 학회에 나가 논문 발표도 하면서 슬슬 전문가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3~4년차가 되면 슬슬 청첩장도 날라오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날 짬이 생긴다. 

 

전문의  

4년차말이 되면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고, 의국 생활을 잘 마무리한뒤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면 드디어 "OO과 전문의" 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의학의 어느 한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사회에서 본인이 내뱉는 말에 큰 책임이 따르게 되는 위치가 된다. 남자들은 보통 이때 군복무를 많이 시작하게 되며,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3년간 복무하게 된다. 군복무를 마친 남자들이나 여자들은, 이후 전문의로서 페이닥터로 근무하거나 대학에 남아 펠로우 (임상강사) 로서 세부 분과에 대한 수련을 1~2년간 더 받고 세부 분과 전문의가 되기도 한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르게 되고, 주말에는 동기 모임에서 서로의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한다. 개원을 막 시작한 어느 동기는 365일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기도 하고, 비혼주의 동기는 페이닥터로 근무하며 적당한 로딩에 QOL 을 즐기며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간단한 글을 쓰는 와중에도, 지난 십여년의 과정이 꽤 녹록치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위 과정을 마친 지금 역시도, 매번 새로운 과제와 도전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 당시의 인내와 노력이 큰 밑거름이 될 거라 믿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현 세대에 의대 지원을 준비하는 여러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귀가 되길 바란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15년전 필자가 지식인에서 얻은 정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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